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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셀프 장례와 종교 의식, 조율 가능한가요?
    셀프장례 2025. 7. 8. 18:31

    “내가 원하는 마지막, 믿음과 형식 사이에서 균형 잡기”

     

    장례는 단순히 사망 사실을 알리는 절차가 아니라, 고인의 인생 철학과 신념을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중요한 의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장례는 종교적 형식이나 가족의 관습, 지역의 전통 등에 따라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종교가 분명한 가정에서는 고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특정 종교의 의식을 따르거나, 반대로 고인이 신앙을 가졌음에도 무신앙 가족의 판단으로 종교 의식이 생략되는 일도 빈번히 발생합니다.

    셀프 장례가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삶의 마지막을 타인의 선택에 맡기지 않고, 스스로의 신념과 감정에 따라 설계하겠다는 주체적 결정이기 때문입니다. 종교 의식은 반드시 포함해야 할 요소가 아니라, 고인의 선택과 가족의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조율 가능한 구성 요소입니다.

    셀프 장례와 종교 의식

     

    실제로 종교 의식은 법적으로 강제되지 않으며, 대한민국의 헌법은 종교의 자유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고인이 원하는 장례 방식을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습니다.

    불교의 49재, 기독교의 장례예배, 천주교의 연도, 유교의 제례 등은 오랜 전통을 가진 장례 의식이지만, 개인의 선택에 따라 전부 생략하거나 일부만 포함하는 것도 전혀 문제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무교인 고인이 유교 가문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협의해 무종교식 헌화 장례를 진행한 사례, 불교 신자였던 어르신이 종교 의식을 전혀 배제하고 조용한 음악만 흐르는 영상 장례식을 요청한 경우도 있습니다. 반대로, 고인이 특정 종교를 가졌지만 가족이 타 종교거나 무신앙일 경우, 종교 의식을 상징적으로만 포함하거나 추모 순서에 간단한 기도를 포함하는 방식으로 절충하기도 합니다. 이런 유연한 장례의 구성은 고인의 뜻과 유족의 위로가 모두 존중받을 수 있는 방식이며, 셀프 장례에서 충분히 구현할 수 있습니다.

     

     

    셀프 장례에서 종교 의식을 조율하고자 한다면, 몇 가지 실질적인 항목을 체크리스트 형태로 사전에 정리해두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첫째, 본인의 종교 유무와 신앙 강도를 명확히 하세요. 단순 문화적 유대인지, 신앙적 확신인지에 따라 의식의 포함 여부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둘째, 장례에서 반드시 포함하고 싶은 종교 행위가 있는지 구체적으로 정리해보세요. 예: 기도문 낭독, 성경 봉독, 염불, 찬송가 한 곡 등.

    셋째, 가족의 종교와 내 종교가 다를 경우, 어떤 방식으로 서로를 존중할 수 있을지 대화를 시도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장례 전체는 비종교식으로 하되, 가족을 위해 추모 시간에 짧은 기도 시간을 포함한다”는 식의 조율이 가능합니다.

    넷째, 의사를 명확히 전달하기 위해 엔딩노트나 유언장에 종교 의식 포함 여부를 구체적으로 명시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장례 시 불교식 염불은 생략하길 원함’, ‘성가대는 초청하지 않고 가족 중심으로 소규모 예배 진행’과 같이 구체적 표현이 유족의 갈등을 줄이고 실행력을 높입니다.

     

     

    나답게 떠나는 이별은 단지 종교를 포함하거나 제외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핵심은 삶을 마무리하는 나만의 방식으로 마지막 순간을 구성하겠다는 주체성입니다.

    고인이 기독교 신자였다고 해서 반드시 장례예배를 고집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반대로 무신론자라고 해도 가족의 위로를 위해 상징적 종교 요소를 소규모로 허용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장례가 ‘정답’인지는 존재하지 않으며, 가장 적절한 장례는 ‘고인의 철학과 가족의 감정이 가장 충돌 없이 공존할 수 있는 방식’입니다.

     

    셀프 장례는 단순히 혼자 준비하는 장례가 아니라, 고인과 남겨진 사람들 모두가 불편하지 않은 이별을 설계하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이 설계에는 종교라는 요소가 포함될 수도 있고, 배제될 수도 있으며, 그 형태는 얼마든지 유연하게 조정 가능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결정이 고인의 뜻에 근거하고 충분히 사전에 공유되었느냐입니다.

     

    지금 바로 당신의 장례를 상상해보세요. 찬송가가 흐르는 공간일 수도 있고,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숲길의 수목장일 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마지막을, 믿음과 나다움 사이에서 조화롭게 그려보는 것. 그것이 바로 셀프 장례가 줄 수 있는 가장 깊은 자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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