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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장례는 불효일까?셀프장례 2025. 8. 4. 18:17
셀프 장례, 자율적 죽음 준비인가? 무언의 불효인가?
누군가가 자신의 죽음을 미리 준비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종종 의아한 시선을 보낸다. 특히 장례를 ‘남겨진 가족이 치러야 할 의무’라고 여겨왔던 전통적 가치관에서는, 셀프 장례는 쉽게 납득되지 않는 개념일 수 있다. 실제로 60대 이상의 기성세대에게 “내가 죽기 전에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가장 흔히 돌아오는 반응은 “죽는 얘기를 왜 벌써부터 하느냐”, “그건 가족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혹은 “그렇게 먼저 준비하면 부모나 자식에게 짐을 주는 셈”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셀프 장례는 여전히 일부 세대에게는 불효나 예의 없음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문화적 충돌이라기보다, 죽음을 대하는 세대별 인식 차이가 명확히 드러나는 사회적 현상이다. 누구는 자율성과 존엄을 위해 죽음을 준비하고, 또 누구는 그 행위를 '감정적 거리두기' 또는 '부모 자식 간 정서적 단절'로 오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셀프 장례는 불효일까?
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죽음 인식 차이’는 어디서 비롯되었나?
기성세대는 죽음을 말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는 문화 속에서 살아왔다. 유교적 전통에서 죽음은 삶의 마지막이자 조상에게 이어지는 신성한 통로였고, 그 절차는 후손의 도리로 여겨졌다. 따라서 ‘스스로 자신의 장례를 계획한다’는 행위는 마치 후손의 몫을 가로채거나, 가족에게 정서적 거리를 두는 듯한 느낌을 줄 수 있었다. 반면, 2030세대를 중심으로 한 젊은 층은 죽음을 회피의 대상이 아닌, 삶의 연장선으로 받아들이는 교육과 경험 속에서 자라났다. 특히 팬데믹, 고독사 증가, 1인 가구 확산 등 현대사회의 변화는 죽음조차도 개인화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강화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셀프 장례는 ‘남에게 폐 끼치지 않기 위한 실용적 선택’이자, 죽음을 스스로 정리하는 마지막 자기 표현으로 이해되고 있다. 세대 간 인식의 단절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하나의 행동을 두고, 한 세대는 ‘책임’으로 보지만, 다른 세대는 ‘이기적’이라 오해하는 것이다.
셀프 장례를 선택한 이들의 진짜 이유는 ‘배려’다
실제로 셀프 장례를 계획한 사람들의 인터뷰나 사례를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키워드는 ‘배려’와 ‘책임’이다. 한 50대 여성은 “자식들에게 마지막까지 부담 주고 싶지 않아서 준비했다”고 말했고, 30대 남성은 “부모보다 먼저 죽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 장례를 정리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셀프 장례는 ‘죽음을 예비’하는 것이 아니라, 남겨질 사람들을 위한 정리와 준비의 과정으로 인식되고 있다. 장례를 미리 준비함으로써 유족이 감정적으로나 재정적으로 무너지지 않도록 돕고, 유언이나 생전 편지, 장례 방식 등을 직접 지정해 두어 ‘나답게 떠나는 방식’과 ‘타인을 위한 배려’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행위인 것이다. 불효라는 말은 이 선택의 본질을 오해한 결과일 수 있다.
오히려 셀프 장례는 ‘죽음까지도 책임 있게 살아낸 사람’이 선택하는 현대적 효(孝)의 한 방식일지도 모른다.
죽음을 준비하는 행위에 담긴 사회적 진화의 신호
우리 사회가 셀프 장례를 둘러싼 세대 간 인식 차이를 좁히려면, 먼저 ‘죽음’을 공공의 화두로 꺼내야 한다. 죽음을 말하는 것이 곧 불길하거나 부정적인 일이 아니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실제로 유럽, 일본, 북미 등에서는 죽음 준비 교육과 셀프 장례 컨설팅이 보편화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가족 간 대화의 장이 마련되고 있다. 한국 사회도 점차 웰다잉 교육과 죽음 체험 프로그램이 확산되면서, 죽음을 통한 감정 정리와 관계 회복의 문화가 생겨나고 있다. 셀프 장례는 그 변화의 핵심에 있는 개념이다. 더는 ‘효도’가 부모의 장례를 대신 치러주는 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진짜 효는 자식이 감정적으로 준비되지 못한 채 갑작스러운 죽음을 마주하지 않도록, 미리 정리하고, 말하고, 안심시키는 배려의 행위로 진화하고 있다.
셀프 장례는 불효가 아니다. 그것은 관계의 마지막을 책임지고, 사랑을 온전히 전하기 위한 가장 조용하고도 깊은 배려다.
가족과의 대화를 통한 인식 전환, 셀프 장례의 다음 단계
셀프 장례를 둘러싼 불효 논란은 단지 세대 간 가치관의 충돌로만 끝나지 않는다. 결국 그 핵심은 ‘죽음을 둘러싼 가족 간 소통의 부재’에서 비롯된 오해다. 많은 경우 셀프 장례를 준비하려는 자녀는 부모와 충분히 대화하지 못했고, 부모는 자녀의 선택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려면 셀프 장례는 단독적인 계획이 아닌, 가족과 함께하는 공동 설계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나중에 너희가 당황하지 않도록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야”, “내가 떠나도 너희가 혼란스럽지 않았으면 해” 같은 문장은 단순한 죽음 준비를 넘어서, 사랑과 배려의 진심을 전달하는 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셀프 장례는 결국 개인의 죽음이 아닌, 남겨질 가족과 사회 전체를 위한 감정적·실용적 설계다. 이 진심이 공유되는 순간, 자율적 장례는 결코 불효가 아니라, 오히려 **‘죽음을 통해 가족을 보호하는 가장 책임감 있는 선택’**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진정한 웰다잉은 죽음을 두려움 없이 이야기하는 용기에서 비롯되며, 그 용기가 가족에게까지 전해질 때 비로소 셀프 장례는 문화로 정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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