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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장례와 나이 듦의 철학 – 죽음을 일상에 포함시키는 연습셀프장례 2025. 7. 25. 18:35
나이 듦과 죽음에 대한 사회적 거리감
한국 사회에서 ‘죽음’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불편하고 무거운 주제로 여겨진다. 특히 나이 들수록 죽음을 가까이에서 목격하게 되지만, 여전히 그것을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심리적 저항감이 강하다.
가족의 부고를 접하고, 주변 친구의 장례식에 참석하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의 죽음은 멀리 있는 일처럼 회피한다. 이처럼 죽음을 외면하는 문화는 노화와 죽음 모두를 부정적인 경험으로 고립시키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죽음을 준비하는 삶’에 대한 새로운 철학이 등장하고 있다. 셀프 장례는 그 중심에 서 있다. 단순히 장례를 직접 준비한다는 실용적 행위를 넘어,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생애 전체를 정리하고자 하는 철학적 실천으로 변화하고 있다. 나이 듦의 과정에 죽음을 포함시키는 연습은 단지 무언가를 포기하는 과정이 아니라, 남은 시간을 더 진지하게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한다.
셀프 장례의 철학적 접근: ‘존엄’과 ‘책임’의 결합
셀프 장례는 단순히 비용을 줄이거나 절차를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한 선택이 아니다. 실제로 셀프 장례를 선택하는 이들은 대부분 삶의 주도권을 끝까지 놓지 않으려는 ‘존엄’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존엄은 단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가족이나 사회에 남기는 마지막 ‘책임’의 표현이기도 하다.
노년기에 셀프 장례를 준비하는 과정은 삶을 정리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된다. 유언장 작성, 장례 방식 선택, 디지털 자산 정리, 추모 콘텐츠 제작 등은 모두 자기 삶을 복기하고, 중요한 관계를 돌아보며, 이후 세대에게 혼란을 남기지 않으려는 배려의 행위다. 일부는 자서전을 쓰듯 자신의 생애를 글이나 영상으로 남기고, 일부는 생전 인터뷰를 기록하며 후대에게 전할 메시지를 정리한다. 이러한 과정은 삶을 마무리하는 동시에 삶의 가치를 증명하는 철학적 시간이 된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한 인간의 총체적 기록을 남기는 마지막 장면이 되기 때문이다.
죽음을 일상에 포함시키는 연습이 주는 심리적 이점
죽음을 직면한다는 것은 결코 우울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셀프 장례를 통해 죽음을 일상 속에서 연습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삶을 더 풍요롭고 단단하게 살아가는 경향을 보인다.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니, 오늘 하루를 의미 있게 살아야 한다’는 자각은 말뿐인 교훈이 아니라, 셀프 장례를 준비하면서 현실이 된다. 실제 교육 프로그램이나 시민대학의 ‘생애말기 수업’에 참여한 중장년층은 삶에 대한 몰입도, 가족과의 대화 빈도, 후회 없는 관계 정리에 더 적극적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또한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정리된 인생’이라는 안정감을 얻으며, 심리적으로는 불안이나 고립감을 줄이고, 감정적으로는 자신과 화해하게 되는 효과가 나타난다. 셀프 장례는 이렇게 삶과 죽음 사이의 거리를 줄이고, 죽음을 통제 가능한 것으로 만들며, 나이 들어가는 과정에서 자기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수단으로 작동한다. 나이 듦은 잃어가는 과정이 아니라, 가질 것을 선택하는 지혜의 시간이 될 수 있다.
철학적 삶의 마무리로서 셀프 장례의 가치
앞으로 셀프 장례는 단순한 사회적 흐름을 넘어, 나이 듦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중요한 철학적 도구가 될 것이다. 죽음을 삶의 마지막 이벤트로 기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은, 곧 삶 전체에 대한 기획과 성찰로 이어진다. 이는 삶의 결과를 정리하는 작업이자, 내가 살아온 방식을 스스로 책임지는 태도다. 셀프 장례는 이제 ‘준비된 죽음’을 넘어, 준비된 인생의 증거가 된다. 나이 들었다는 이유로 사회로부터 배제되거나 스스로 의미를 상실하는 일이 아닌, 삶의 마지막까지 주도권을 행사하는 새로운 인식의 전환점이다. 중장년층 이상에게 셀프 장례는 단지 남겨진 이들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 나를 위한 자기완결의 선언이기도 하다. 죽음을 공포가 아닌 연습 가능한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존엄과 책임을 설계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삶을 온전히 살아낸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마지막 지혜가 아닐까.
죽음을 계획하는 행위는 곧 인생 전체를 디자인하는 선택이다
셀프 장례를 준비하는 행위는 단지 죽음을 관리하는 일이 아니라, 삶 전체를 하나의 설계도로 바라보는 태도이기도 하다. 죽음을 일상에 포함시킨다는 것은, 내 삶의 마지막이 어느 날 갑자기 닥치는 통보가 아니라, 스스로 계획하고 연출할 수 있는 주체적 사건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 점은 나이 든 이들에게 특히 중요한 변화를 가져온다. 누군가는 치매나 질병을 염두에 두고 생전 장례 절차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누군가는 마지막 모습까지 자신의 가치관에 맞춰 결정한다.
이처럼 셀프 장례는 남겨진 사람들에게 부담을 줄이기 위한 배려를 넘어서, ‘나는 끝까지 나로 살겠다’는 정체성 선언이 된다. 이는 곧 나이 듦의 시간을 허무하게 소비하지 않고, 오히려 삶의 정점으로 끌어올리는 방식이기도 하다. 삶을 정리하고 떠나는 준비는 결코 어두운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가장 깊이 이해하고, 그 이해를 통해 마지막 순간까지 나답게 존재하기 위한 지혜로운 연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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